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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1호 매장에는 값싸고 질좋은 옷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고객이 늘어감에 따라 유니클로는 더 많고 다양한 옷을 구비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공급처도 늘어나게 됐죠. 하지만 야나이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옷들도 쌓여갔습니다. 

장사는 잘 됐지만, 야나이는 불안했습니다. 고객은 더 좋고 저렴한 상품을 위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값싸고 질좋은 의류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의 답을 찾던 야나이는 홍콩에서 레이 지미(Lai Chee Ying Jimmy)를 만났습니다. 그는 미국 의류회사에서 하청을 받아 납품하던 업체를 운영하던 중, SPA방식의 캐주얼 의류 전문점인 '지오다노'를 창업하여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어요.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는 의류의 기획에서 생산, 유통까지의 모든 공정을 일원화하는 사업의 형태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갭(GAP)이라는 미국회사가 1980년대 말에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갭은 매출의 30%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해야 하는 백화점을 피해, 자체 매장에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유행에 민감한 옷들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임대료의 거품을 제거한 갭은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갭의 성공은 단순히 가격과 품질 정책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의류산업 전반의 혁신이었습니다. 


기존의 의류 회사들은 공정 과정에서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게 변경하거나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처음에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서 마진을 확보하고 이후 재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일을 남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점차 업계 자체를 불신하기 시작했죠. 


이에 반해, SPA업체들은 자사에서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고 제품을 처음부터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반응이 좋은 제품은 재빨리 대량생산을 시작했고, 팔리지 않는 제품은 바로 세일로 처분하여 손실에 발빠르게 대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SPA 업체의 가격정책을 신뢰하고 점점 더 구매를 늘리게 됐습니다. 


유니클로의 매출은 급증하고 있었지만 언론의 반응은 오히려 좋지 않았습니다. '시골의 싸구려가게', '촌스러움의 극치'라는 표현을 써가며 유니클로를 평가절하했죠. 하지만 일본경제의 불황이 더 심해지고 실업률이 증가하자, 유니클로를 입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연일 최고 매출액을 갱신하고 새로운 고객이 몰려 들었습니다. 창업 10년 만에 유니클로의 매장은 100개를 넘었으며, 대형 의류 체임점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유니클로의 슬로건처럼 야나이회장은 이 무렵 유니클로가 차별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야나이의 고민은 일본 열도 전체에서 유니클로의 포효를 알리는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야나이회장이 관심을 가진것은 따뜻하고 가벼운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등산복 등 보온용 소재에 주로 사용되던 플리스(fleece)라는 소재였습니다. 플리스는 화학섬유인 폴리에틸렌을 양털처럼 부드럽게 만든 원단으로 얇고 가벼웠으며 보온성이 좋았습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후리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가볍고 따뜻한 옷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2만 장 정도만 팔려도 나름 성공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후리스는 1998년에만 200만 장이 팔렸습니다. 


불황 속에서 사람들은 후리스가 난방비를 절감하기에도 좋은 옷이라고 생각했으며, 유니클로는 다양한 색상을 구비해 한사람이 몇벌을 구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후리스의 인기는 치솟았으며 1999년에는 850만장이 팔리고, 2000년에는 무려 2,600만 장이 팔리며 일본열도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옷으로 기록됐습니다. 


유니클로의 두번째 성공은 방한 속옷에서 시작됐습니다. 내복을 전략상품으로 하자는 것에 대한 회사 내부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습니다. 옷의 맵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은 내복은 나이든 사람들이 입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화학회사인 도레이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히트텍은 얇으면서도 속옷보다는 훨씬 따뜻했으며, 합성섬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기 쉬웠습니다. 가격은 기존의 방한 속옷보다 훨씬 저렴한 1000엔 내외로 책정되었으며 대표적 '불황형 상품'이었습니다. 2008년 겨울을 대비해 유니클로가 준비한 2800만 장은 가을이 끝나기 전에 매진되어 버렸습니다. 히트텍의 판매는 2009년 5천만장, 2010년 8천만장에 이어 마침내 2011년 한해동안 1억만장이 팔리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96.3%의 사람들이 히트텍을 알고있으며, 55.3%의 사람들은 히트텍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혁신 제품에 대한 유니클로의 시도는 물론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지만, 유니클로의 기업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2009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여름용 속옷 '사라파인'은 3개월만에 품절되었습니다. 사라파인은 땀을 빨아들여 늘 보송보송한 감촉을 유지하였으며 여름의 히트텍이 되었습니다.




2016년8월 현재 유니클로는 전 세계 3,160개의 매장과 43,0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초거대기업으로 발전하였습니다.